詩에 길을 묻다 詩가 길을 내다
고재동(택시 기사ㆍ시인)
일기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11시경부터 내린다던 비는 정확하게 그 시각 대지를 적신다. 주룩주룩, 큰비로 내리진 않을 것 같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 계절은 비가 잦다. 겨울 끄트머리에서부터 봄이 무르익을 때까지 벌써 몇 차례인가. 10회 이상 다녀간 비. 사흘 돌아서면 비가 내리곤 했다. 이상기류, 기후인 게 틀림없다.
인류가 지구에 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한반도의 경우를 보면 사계절이 뚜렷했고 비가 내려야 할 시기, 눈이 내려야 할 시기를 예측할 수 있었다. 농경 문화에 맞추어 적당히 비가 내려줬고 기온도 계절별로 적정 온도를 유지했다. 겨울에는 동물들을 배려해서 적당하게 눈이 산천을 덮었다, 녹기를 반복했고... 지난 11월에 일본에 갔을 때 느닷없는 아기 주먹만 한 우박에 머리를 맞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 모든 현상은 지구를 그대로 두지 않은 인류가 그로부터 되돌려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틀림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름에 눈이 내리지 말란 법이 없다. 겨울에 소나기가 내려 홍수가 난다면 될 말인가?
그렇다면 이대로 지구를 방치, 모른 척 오염만 시켜야 하는가. 코로나 같은 질병이 지구를 괴롭힌 지구 인이 되돌려 받는 현상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하자던 건 아닌데 너무 나간 것 같다. 이 비쯤이야 오늘 행사를 진행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을 듯하다. 오래전부터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준비해 온 행사다. 자웅암 테마공원이 와룡 시 정원으로 거듭나는 날이다.
오늘은 택시에 손님을 태우기는 글렀다. 대신 시 몇 편을 모셔야 할 것 같다.
웅숭깊은 와야천
거석문화 꽃 피고
자웅암 치마바위
바라보며 연시聯詩 적는
臥龍 땅
詩가 머무는 뜨락에
버들치도 와서 논다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던 비는 행사가 시작되는 3시에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뜰에 핀 민들레 노란 꽃잎을 아프게 때리지는 않았다. 최소한 일주일 간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 시 정원에는 햇볕이 뜨거웠다. 벗겨진 내 머리를 한 겹 더 벗겨 놓을 정도로 강렬한 볕이어서 걱정을 해 오던 터였다. 요만한 비쯤이어서 얼마나 다행한가.
호숫가 버드나무 기지개 켜던 날에
월영교 굽어보며 그니와 나눈 커피
저 강을 다 가진다 한들 그 향내에 견줄까
대문 앞 우리 별이 집배원 아저씨와
말 섞다 돌아서서 봄소식 읽고 있네
연둣빛 움트는 사연 강남에서 왔는가
--<소소한 날>
지난 4월 20일 토요일 오후 3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와룡문학회 주최, 주관 시판 제막 행사 및 시화전 등이 와룡 시 정원(자웅암 테마공원)에서 150명의 축하객과 관광객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행사에는 와룡문학회와 자매결연 단체인 수원문인협회(회장 김운기) 40명의 작가들도 함께 참여 자리를 빛내줬다.
전국에서 면 단위 문학 단체로는 유일한 와룡문학회(회장 고재동)는 지지난해에도 와룡산 등산로에 이육사 시 등 25개 시판을 설치하여 지역민과 관광객의 시심을 자극하고 인문학의 가치를 높여왔다.
올해는 출향인 김현탁 시인과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임상근 시인의 시비도 함께 설치 제막하므로 와룡 시 정원의 서막을 알렸다. 농암 이현보의 '효빈가'를 비롯한 와롱문학회원의 시판 15개와 수원 문인협회 시인들의 시화 작품 등 30점의 시화도 동시에 옥외 전시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외빈은 축사를 통해 '메말라가는 현대사회에 시로 인해 촉촉한 감성을 자극하고 힐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와룡 시 정원 조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멀리서 온 수원문인협회 회장은 '시비를 제막하는 두 분 시인께 축하를 전하고 빛나는 자리를 마련해 준 와룡문학회 회원들께 감사하다'라고 술회했다. 또한 안동문인협회 회장은 '안동문인협회 회원 다수가 속해 있는 와룡문학회 시화전과 출판 기념회를 진심으로 축하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식전 공연으로 이동백 시인의 색소폰 연주와 송은정 시인의 시 낭송이 있었고 고재동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축사와 격려사로 이어졌다. 이어서 시비 제막 순서를 가졌고 김현탁 시인과 임상근 시인의 감사 인사 후 박병래 시인과 송은정 시인이 시비의 시를 낭송했다. 한미숙 시인의 축가에 이어 수원문인협회와 와룡문학회 상호 간에 선물 교환 순서도 가졌다.
고재동 와룡문학회 회장은 '거석 문화 꽃 피고 웅숭깊은, 맑은 와야천이 흐르는 명소가 '와룡 시 정원으로 거듭나는 뜻깊은 날에 차리를 꽉 채워주신 축하객과 관광객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이곳에 전시된 시만 해도 시집 반 권에 해당하는 마흔여덟 편이라며, 이 시들만 다 읽어도 감성이 충만하고 삶이 윤택해진다고 강조했다. '詩에 길을 묻다, 詩가 길을 내다'라는 슬로건 아래 빗속에서 개최된 시가 노는 정원에서의 행사는 봄날 오후를 꽃으로 수놓으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와야천 거슬러 그렁그렁 봄이 오고
물길 따라 아삼아삼 흘러만 가는가
어이해 불붙은 가슴
재울 길이 없어라
갈대밭에 이는 바람 내 마음 흔들어도
개울은 운명처럼 거슬러 갈 수 없어
윗마을 내 임 사는 곳
닿을 수가 없구나
자웅암 치마바위 유혹하는 가을날
새맑은 물속에 그대 흔적 묻었을까
진종일 와야천 물길
굽어보며 턱을 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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